2011/04/27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라!’ 마태복음 6장 28절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라!’ 마태복음 6장 28절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6:28)”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늘과 땅과 땅위의 모든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기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지 말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과 목숨을 위하여 먹을 음식과 입을 옷 때문에 근심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결국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함으로서 이 세상에서의 재물과 유익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 섬길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을 위한 옷과 음식, 재물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길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 나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들을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6:33).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해 주시는 길가에 자라는 꽃을 보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닳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수고 없이 오직 하나님의 손길아래 자라나는 길가의 풀과 꽃과 나무를 바라보며, 나의 삶을 길가의 꽃과 같이 온전히 하나님의 손길아래 맡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 jszr (2011.4.2)

*느헤미야 9:6 -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2011/03/28

내 사랑하는 자, 내 기뻐하는 자 (마태복음 3장 17절)


‘내 사랑하는 자, 내 기뻐하는 자’ 마태복음 3장 17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3:17)”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오셔서 모든 의를 이루시고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3:15). 그리고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께 임했습니다 (3:16). 이 때에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누구 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 곧 그의 보내신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표현을 아낌없이 죄로 가득한 우리를 위해서도 표현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또한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바냐 3:17). 하나님께서는 죄로 가득한 연락하고 초라한 우리를 그의 독생자 아들을 사랑하시듯 사랑해 주십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온전히 믿음으로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기쁨과 사랑에 동참할 수 있는 은혜를 체험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jszr (2011 0319)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2011/01/15

Galatians 2:20

In 2011, as Paul confesses, I do the same confession,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lives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up for me."

Jesus Christ, You live. Yes, I know.

(NASB) Galatians 2:20

2011/01/01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요한복음 14장 16절)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요한복음 14장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4:1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과 진리, 생명입니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14:6). 그런 우리 삶의 유일한 구원의 통로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14:2). 이제 우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러 가시는, 그리고 곧 다시 오시는(14:3)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영을 보내 주십니다. 이는 곧 진리의 영이며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영입니다 (14:16-17).

스스로 진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진리의 영을 보내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시는 진리의 영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며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2절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일을 할 수 있으며 그보다 더 큰일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가시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육체로 오셔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과 함께 계셨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가셔서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자신의 영을 우리 모두에게 보내주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이며, 아직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인 이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서 능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시는 사랑의 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보내주신 진리의 영이 오셔서 무엇을 하신다고 합니까? 그가 오셔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14:26).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때가 임박하여 제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또한 반복적으로 다양한 표현들을 이용하여 말씀하신 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그의 계명을 지키라 했고(14:15),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며(15:12),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고(15:13), 이 새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다고 하셨으며(14:21), 또한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14:24). 결국 이 모든 말씀하신 것들을 통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희생하심으로 모든 죄의 벽들을 허무신 지금,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십자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위로는 그리스도 사랑, 옆으로는 서로 사랑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오셔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이 모든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며 기억나게 하실 것입니다.

나의 삶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삶에 따라 사는 삶 입니까?

-jszr (2010 1022)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요한복음 13장 35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요한복음 13장 35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3:35)”

그리스도께서 때가 이르기 임박한 때에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서 보이셨고 또한 이후 보이실 그 사랑의 모습과 같이 우리 또한 세상에서 서로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13:34).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사랑은 처음이며 마지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그 때가 이르렀을 때에 세상에 있는 자신의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3:1).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하는 것은 곧 사랑의 본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시작만 있지 않습니다. 또한 중도 포기도 없습니다. 어떤 시각에서 본다면 결국 사랑은 끝이 없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의 또 다른 표현은 곧 희생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이라는 새 계명을 주시려 오셨는데, 율법에 묶여 죄 아래 있는 우리를 온전히 사랑의 법 아래로 옮겨주시기 위해서는 예수님 자신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이 십자가의 희생이 곧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이웃, 형제, 자매를 위한 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신 이 새 계명을 이 땅에서 완성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며, 우리가 세상에서 살면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명확하고 깨끗한 방법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인 임을 알 것 이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13:35). 이 것은 이 땅에서 온갖 가식과 오해로 가득 차있는 채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강력한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주일 교회 참석, 선한 봉사 활동 등 이와 같은 것들이 우리가 세상에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나타내는 방법으로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방법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 한가지, 곧 서로를 사랑하는 것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리스도인 입니까?

-jszr (2010 1018)

“경건하여…” (요한복음 9장 31절)

“경건하여…” (요한복음 9장 31절)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9:31)”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십니다 (9:31). 앞선 몇몇 요한복음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습 바로 그 자체를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10장에서는 이 것의 또 다른 비유로써, 예수님께서 우리를 양에 비유하시고 자신을 목자에 비유하시어 자신을 희생함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10:10,11).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의 말을 들으십니다 (9:31). 경건은 무엇입니까, 경건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경건한 사람에 대한 표현으로 각각의 영문 번역본에서는 다양한 표현으로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NASB 역본에서는 경건한 사람의 모습을  “God-fearing”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은 사람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순종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의 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으로 들으십니다. 또한 NLT와 King James 역본에서는 각각 “those who worship Him”, “a worshipper of God” 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경건의 모습을 예배자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곧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NIV에서는  “the godly man”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경건”이라는 표현은 이 단어의 어감이 주는 것 같은 그 정적인(static) 개념을 뛰어넘어서, 경건한 사람이 갖고 있는 상태(being itself)와 그것의 표현(expression of being)과 결과 적인 그 것의 모습을 모두 어우르는 동적인(dynamic)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할 때 더욱 깊이 이해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의 본질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 경건함을 나타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jszr (2010 1010)

***
God-fearing (NASB)
Those who worship Him (NLT)
A worshipper of God (King James)
The godly man (NIV)

하나님의 기쁨 (요한복음 8장 29절)

하나님의 기쁨 (요한복음 8장 29절)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8:29)”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언제나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8:29).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자신의 뜻이 아닌 보내신이 곧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입니다. 이는 역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유일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 이었으며, 이는 곧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시길 원하는 하나님의 뜻은 바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일 입니다 (6:3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말고 마지막 때에 모두 살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 일이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생명 주시는 것, 혹은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6장 29절에서,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이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하여 생명을 주시는 것,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기쁨만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죄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이 놀라운 은혜 위의 은혜는 동시에 우리, 나의 기쁨이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 속한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합니다.

-jszr (2010 1002)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 (요한복음 4장 23절)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  (요한복음 4장 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3)”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4:24).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은 영으로 예배해야 하며 또한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에 사로 잡혀 죄의 모습 그 자체이었으며, 철저히 육에 속해 있던 우리가 이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게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을 친히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14:16), 또한 우리는 은혜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서 그 안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1:17).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참된 예배자(true worshiper)의 모습입니다 (4:23). 그리고 그 참된 예배자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할 때가 바로 이때라고 말씀하십니다 (4:23). 이 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완성하여 주시고, 하나님께 돌아가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신 이 때 입니다. 결국 이 때는 곧 마지막 때 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4:23).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의 마음(mind)과 하나님의 영으로 거룩하여진 마음(heart)으로 무장한 참된 예배자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그런 참된 예배자의 모습으로 부르십니다.

-jszr (2010 0926)

말씀, 그리스도의 영광, 은혜와 진리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 그리스도의 영광, 은혜와 진리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14)”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창1:1), 만물을 그의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1:3).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1:1-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1:14), 곧 우리 가운데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 안에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grace)와 진리(truth) 입니다 (1:14).  이는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the Law)에 나타난 모든 죄와 허물을 뒤덮는 것, 곧 죄에 속한 우리에게 빛과 생명인 복음입니다 (1:17).

세상 모든 것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명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입니다 (1:4). 우리의 생명인 그 말씀을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는 것(1:4-5)은 우리가 생명력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말합니다. 율법(the Law)과 죄에 속하며 생명력이 없는 우리가 마치 이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그야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순과 같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29).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the Law)아래 속하여 죄가 된 우리를 은혜와 진리의 자리로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받았으니, 이는 곧 은혜 위에 은혜, 충만한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1:16).


-jszr (2010 0917)

2010/12/27

The Word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He was in the beginning with God. All things came into being by Him, and apart from Him nothing came into being that has come into being.

- John 1:1-3